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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테리어 매거진 메종(Maison) 2014.6월호
작성자 강화도령 (ip:)
  • 작성일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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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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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아온 화문석의 자취를 찾아간 강화도. 화문석
평가 장인인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아 강화 왕골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박윤환 대표와 전통 방식으로 화문석을 제작하는 장인들을 만났다.

고운 색감을 입은 꽃삼합.
대한민국에서 5번째로 큰 섬 강화도의 왕골 공예품인 화문석.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원나라로 수출되던 인기 품목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와 일본의 왕에게 보내는 선사품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왕골을 이용해 멍석, 바구니 등 생활 소품을 만드는 것을 완초 莞草 공예라 하는데, 이는 우리 조상들이 음식을 담아두거나 바느질 광주리로 사용하던 단합에서부터 시작됐다. 초기에는 종이를 꼬아서 만들던 것을 조선 말기부터 왕골을 이용해 제작했는데 이것을 꽃삼합이라 부른다. 완자, 꽃, 태극, 봉황 등의 무늬를 수놓은 꽃삼합은 실내장식용이나 귀금속 보관함으로도 사용된다. 그중 색 물을 들인 왕골을 엮어, 무늬를 따라 잘라낸 꽃돗자리를 ‘화문석’이라 한다. 꽃 화 花, 무늬 문 紋, 자리 석 席 말 그대로 꽃무늬를 놓은 자리다. 왕골은 통풍이 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여름에는 눅눅하지 않고 시원하며 겨울에는 너무 차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 사계절 사용할 수 있다.

전통 방식으로 화문석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롱대롱 달려 있는 고드랫돌을 60만 번 이상 돌려 넘겨야 한다.
1980년대부터 화문석은 국내산과 중국산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작품의 수준에 따라 A~F 등급으로 매겨지는데, 중국산이 수입되면서부터 우리 손으로 빚은 아름다운 작품임에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손끝보다는 눈 끝 명인이었던 40년 전통의 ‘삼성 돗자리’를 운영했던 박성찬, 유인순은 화문석을 평가하는 장인. 1981년부터 운영했던 삼성 돗자리에서 양질의 화문석 작품 대부분이 팔려나갔기 때문에 그 신뢰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다. 부부가 나서야 화문석장(5일장에서 따로 열리는 장)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화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실제 해외에서는 장인의 작품을 평가하는 전문가도 장인이라 불리는 걸 보면 이들 부부가 분명 좋은 화문석을 골라내는 장인임에 틀림없다. 박성찬, 유인순 부부의 아들 박윤환 씨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인 화문석을 끝까지 보존하기 위해 가업을 잇고 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골 재배부터 가공, 염색, 건조, 제조, 판매 및 사후 관리는 물론이고, 고품질 왕골 공예의 제조, 유통을 위한 모든 과정을 표준화하기 위해 ‘강화도령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인 화문석의 명맥을 잇는 강화도령을 운영하는 박윤환 대표(가운데)와 화문석 장인들.
“무엇보다 강화 화문석을 대중에게 알리는 게 가장 큰 목적입니다. 강화의 왕골 문화를 보존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열고 싶었습니다.” 30대 중반인 박윤환 씨는 화문석 평가 장인으로 인간문화재 등재를 꿈꾸며 오늘도 화문석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드랫돌을 60만 번 이상은 돌려 넘겨야 화문석 한 장이 만들어진다. 왕골의 안과 밖을 연결해 함께 짜 밀어 넣었을 때 안과 밖이 완벽하게 일치된다. 화문석에는 되풀이되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한결같아야 한다는 사람의 마음과 똑 닮아 있다.

박성찬, 윤인순 부부 장인이 소장하고 있는 화문석

글과 사진 이정민 (물나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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