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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년 장인의 베틀_안병진 경인방송 PD
작성자 강화도령 (ip:)
  • 작성일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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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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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요즘 내가 제작하고 있는 것은 <인천의 소리>라는 프로그램이다.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사업 설명하러 갔다가 “자유의 소리 방송이냐”, “촌스러운 타이틀”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래도 지원은 해주겠지 하는 마음에 참았는데, 결국 지원도 못 받았다. 그날 이후 보란 듯이 잘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인천의 소리>는 인천이란 도시 공간의 삶과 문화를 소리를 매개로 들려주는 캠페인이다. 내 고향이기도 하고 나름 공부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템 선정부터 제작까지 모든 게 쉽지 않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소리’이다.

자장면은 인천을 상징하는 음식이지만 전국 어디에나 있다. ‘후루룩’. 오랜 역사의 중식당이나 어제 신장개업한 곳이나 소리는 마찬가지다. 인천에만 있는 소리가 많지 않을뿐더러, 인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소리는 막상 예상했거나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소리 자체가 듣기 좋거나 나쁜 걸 떠나서 소리의 개성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소리 자체가 생명이니 연출할 수도 없다.

화문석 짜는 소리도 혹시 그러지 않을까 걱정을 안고 강화로 향했다. 강화는 1995년 인천이 광역시로 확장되면서 경기도에서 인천으로 편입됐다. 김포를 지나야 갈 수 있을 만큼 같은 인천이라고 하기엔 먼 곳이다. 그래도 취재 아이템을 위해서는 강화가 인천인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가. 강화를 일컬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소리의 천국이지도 않을까.

화문석(花紋席)은 한자어 그대로 꽃무늬를 수놓은 돗자리이다. 한해살이 풀인 왕골을 엮어서 짠다. 그 역사가 신라시대부터 이어진다. 강화 화문석은 예로부터 알아주는 진상품이었다. 품질 좋은 왕골이 잘 자라고, 대대로 기술이 뛰어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나무와 달리 누워 있어도 등에 배기지 않고 습도 조절도 잘 된다. 지금처럼 습한 여름철에 그만이다. 강화 송해면에 화문석마을이 있지만 이제 남은 기술자들은 손가락에 들 정도이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일이 고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 강화도령 전시관의 화문석 ⓒ안병진 PD

우선 강화도령이란 곳을 찾았다. 화문석 짜는 체험도 하고 판매도 하는 곳이다. 화문석 짜는 집안에서 자란 아드님이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차렸다. 젊은 감각으로 디자인 한 것을 동네 어르신 기술자들에게 의뢰해 제품을 받아 판다. 이곳에서는 반자동 화문석 베틀을 한창 개발 중이었다. 화문석 짜는 어르신들이 점점 줄어, 이렇게라도 대를 이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늘 어르신이 이곳에 오셔서 짜기로 했는데 아프셔서 못 나오신대요.”

“아 그럼 어쩌죠?”

“다른 어르신 집으로 같이 가시죠.”

강화도령을 따라 논길을 차로 달렸다. 논에는 뜨거운 태양을 받은 벼들이 푸르다. 태양은 벼들도 키우고 화문석도 키운다. 강화는 이모작을 한다는 말이 있다. 논에 벼도 심고 왕골도 심는다.

봄에 씨 뿌려 모종한 왕골을 논에 심으면 7, 8월에는 어른 키보다 더 훌쩍 자란다. 그걸 세 갈래로 잘라 찌고 말린다. 은근히 말려야하기 때문에 광에 넣고 연탄을 이틀 동안 태운다. 그것을 다시 물에 담가서 색을 빼고 말리기를 여러 번 해야 한다. 앉아서 짜는 일도 고되지만, 왕골을 재배하는 과정은 더 힘들다. 그래도 왕골이 좋은 이유는 마디가 없어서 부드럽고 습기를 잘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 강화도령 당신리 내곡촌의 농가. ⓒ안병진 PD

강화 송해면 당산리 내곡촌. 강화도령을 따라 도착한 농가를 보고 나와 녹음 엔지니어 ‘유지방’은 깜짝 놀랐다. 도령은 우리를 민속촌에 데리고 온 것인가. 집 앞마당에는 왕골이 자라고 문풍지를 바른 한옥 작은방에서는 어르신 세분이 자리를 짜고 계셨다. 지붕에는 둥지를 튼 제비가 들락거리고 마치 옛 자료화면에서나 보았을 법한 농촌 풍경이었다. 어르신들이 이 집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일 지경이었다.

“부침개 먹어요. 지금 해서 맛있어.”

하하호호. 먹을 것부터 내어주시는 어르신들의 분위기가 좋다. 물어보니 부부 내외와 올케라고 한다. 세 명이 한 팀, 40년 경력의 장인들이다. 예전엔 어느 백화점에 가서 며칠씩 짜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힘들지만 나이 먹으니 이만한 돈벌이도 없다고 한다.

“일이 고되어 그렇지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도 몰라. 여기 시골에서 이거 안하면 못 살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이 하시던 걸 어깨 너머로 배운 거야. 30년 전만 해도 화문석이 많이 나왔지. 지금은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세 분 가운데 시누이인 안금자(66세) 어르신이 제일 고수이다. 긴 나무 베틀에 나란히 앉아 고수가 먼저 짜기 시작하면 남편과 올케가 그걸 이어받아 짠다. 나일론 줄에 매달린 100여개의 고드랫돌이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어린 시절 공기놀이하던 소리 같다.

“예전에는 이게 돌이었어. 언젠가부터 쇠로 바뀐 거지.”

그러고 보니 고드래 돌이 아니라 쇠다. 돌이 사라진 지 오래전 일이라 한다. 예전에는 농사일 끝내고 밤늦게까지 호롱불 피워가며 짰다. 밤에는 고드랫돌 부딪히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 화문석 짜는 소리 녹음하고 있는 모습. ⓒ안병진 PD

“예전에 어떤 강화 여자가 서울로 시집을 갔는데, 배운 게 이거잖아. 결혼해서 방에서 혼자 이걸 짜는데 남편이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그랬다잖아. 하하하.”

오랜 팀이라 그런지 두런두런 사이가 좋다. 부침개도 먹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한다. 고드랫돌 소리도 어르신들도 목소리도 맑고 경쾌하다. 혹시나 소리가 시원찮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이다.

언젠간 이 소리도 사라지겠지만 어르신들 모습을 보니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고된 일도 좋아서 하니 즐겁다. 마당에는 왕골이 쑥쑥 자라고 제비는 요란하다. 사이좋게 나이를 나눠 먹으며 자리를 짜는 시누이와 올케. 화문석 짜는 이 자리가 꽃자리이다. Radio is A Virus!

 


안병진 경인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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